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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가성비의 나라 ‘인도’ ① 풍부한 인적자원 업고 우주 강국으로

인도의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가 달의 남극 지역 착륙에 성공하며 인류 달 탐사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인구 1위의 대국이자 평균 연령 28세의 젊은 나라 인도의 잠재력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단일 국가 중 가장 큰 폭의 생산가능인구 증가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인도 성장세의 배경으로 풍부한 인적 자원과 가성비 전략이 거론된다.

인류 최초, 달 남극 착륙 쾌거

지난달 23일 오후 6시 4분 인도의 세 번째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가 달 남극에 착륙했다. 7월 14일 지구를 출발한 지 40일 만의 쾌거다. 이로써 인도는 1966년 구 소련(루나 9호), 1969년 미국(아폴로 11호), 2019년 중국(창허 4호)에 이어 네 번째로 달 착륙에 성공한 국가인 동시에 인류 최초로 달 남극에 우주선을 착륙시킨 국가가 됐다.

특히 이번 쾌거는 지난달 20일 러시아 무인 달 탐사선 ‘루나 25호’의 기체가 달 표면에 충돌하며 완파된 지 사흘 만에 이뤄져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1957년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등 전통적 우주강국으로 꼽히던 러시아의 위상이 꺾이는 순간이었다. 영국 레스터대학교의 마틴 바스토 천문학과 교수는 “달의 극지 착륙은 적도 착륙보다 훨씬 더 어렵다”며 “아무도 해본 적 없는 극궤도에 진입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 23일(현지 시간) 인도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의 달 남극 착륙 준비 과정에서 보이는 달의 표면/사진=인도우주연구기구(ISRO)

이보다 앞서 인도는 2008년 첫 번째 달 탐사선 찬드라얀 1호를 통해 달 남극의 ‘영구 음영 지역’에서 물 분자를 발견하는 성과도 거둔 바 있다. 달 남극은 다량의 물이 얼음 상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인류의 우주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주목받고 있다. 인류가 달에 유인기지를 세우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물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통해 산소와 식수는 물론 로켓 연료로 쓸 수 있는 수소까지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게 되는 만큼 화성과 태양계 외행성 유인 탐사의 난도가 크게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선 후부터 인류는 달 탐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러시아, 미국에 이어 일본, 중국, 인도가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지난달 26일 무인 달 착륙선 ‘슬림’을 H-2A 로켓에 실어 보냈으며, 미국은 ‘아르테미스’를 통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남극에 우주인을 보낼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오는 2024년 ‘창허 6호’를 달 남극에 착륙시킬 채비에 한창이다.

우주 변방국 인도, 퀀텀 점프의 비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주 기술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인도가 세계 우주 산업을 주도하는 퀀텀 점프에 성공한 배경은 뭘까. 전문가들은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임금’을 꼽는다. 인도는 약 14억2,863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세계 1위 인구 대국이다. 중국의 인구는 2021년 이후 감소세에 접어든 반면, 인도의 인구는 지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2024년에는 15억 명, 2064년에는 17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인도의 평균 연령은 28세로, 25세 미만의 젊은 인구가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평균 39세)과 미국(평균 38세)에 비해 훨씬 젊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인도 전체 인구 중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60.9%에서 2021년 67.5%까지 급증해 이미 중국(60%)을 앞질렀다. 아울러 향후 10년간 약 1억 명의 노동인구가 추가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인도우주연구기구(ISRO) 인력은 1만7,000여 명으로 미 항공우주국(NASA·1만7,396명)과 맞먹는다. 전통 우주 강국 독일(8,444명)과 프랑스(2,400명)보다도 많고, 한국(1,039명)과 비교하면 16배 수준이다.

더욱이 인도의 평균 월 실질임금도 404달러(약 53만원)로 중국(약 201만원), 베트남(약 99만원)보다도 현저히 낮다. 특히 중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만큼 가격 경쟁력 면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렇다고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도의 IIT(인도공과대), 로욜라대학 등 이공계 대학들의 경우 미국 아이비리그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년 약 130만 명씩 배출되는 인도의 공대생들을 저렴한 인건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인도의 가파른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취업과 카스트(신분제) 극복을 꿈꾸는 인도의 우수 인재들이 자국 내 유수의 공과대학에 몰리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 빅테크들 또한 이들의 역량을 인정해 스카우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 모두 인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수재들이다.

이렇다 보니 인도에 지사를 두고 현지 채용을 늘리는 등 임금 격차를 이용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IT 기업인 IBM은 미국 본사보다 인도에서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미국과 인도의 평균 임금을 비교하면 약 10배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인도 지사가 없어질 경우 IBM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인도우주연구기구(ISRO) 우주응용센터(SAC)의 한 관계자는 ‘인도의 브레인들이 NASA 등 해외로 유출되는 경우도 많은 게 현실인데, 걱정 없느냐’는 질문에 “14억 인도에는 브레인이 많아도 너무 많다”고 웃으며 답했다.

사진=ISRO 공식 X(구 트위터)

인도우주연구기구 예산, NASA의 1/38 수준

이런 가운데 찬드라얀 3호 미션에 얼마나 많은 예산이 투입됐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ISRO에 따르면 찬드라얀 3호의 개발 비용은 7,500만 달러(약 991억원)로, 이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의 제작비인 1억6,500만 달러(약 2,180억원)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다. 미국은 최근 달 탐사선을 쏘아 올릴 로켓 실험 발사에만 5,000억원 이상이 투입됐고, 일본의 경우 2007년 일본의 첫 달 탐사 위성 ‘가구야’에 4억8,000만 달러(약 6,331억원)가 소요된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ISRO의 연간 예산 역시 15억 달러(약 2조원)로 NASA 예산인 598억 달러(약 79조원)의 3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인도의 우주개발은 저렴한 비용으로 ‘가성비’를 추구하는 게 특징이다. ISRO 과학자들은 ISRO가 실험하는 방식 또한 비용 절감에 기여한다고 전했다. 실제 실험 전에 많은 위험분석과 모의실험을 많이 거쳐 실험 횟수를 줄인다는 설명이다. 한 ISRO 과학자는 “유럽인들은 모터나 엔진이 제대로 가동하는지 알아보려고 8번가량 실험하지만 우리는 단 두 번, 기껏해야 세 번의 실험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인도 특유의 가성비 전략인 ‘주가드(Jugaad) 정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주가드는 힌디어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의미다.

사실 인도가 처음 우주 개발에 나설 당시만 해도 비관론이 우세했다. 터무니 없이 적은 예산으로는 성공할 리 만무하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어린이 5분의 2가 영양실조인 데다, 인구 절반이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다”며 인도에 돈 낭비하지 말라는 칼럼을 냈으며, 인도 언론들도 회의적인 시각을 담은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이에 인도 과학자들은 2014년 미국·러시아·유럽에 이어 네 번째로 화성탐사선 ‘망갈리안’을 궤도에 진입시키며 성과로 답했다. 2017년에는 로켓 하나에 104개의 위성을 탑재·발사해 세계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역시 주가드 정신이 제힘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인도가 우주 산업에서 가파른 성장을 보일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은 미·중 패권 경쟁의 반사이익이다. 1980~1990년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키웠던 미국이 2020년대 들어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인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6월 인도는 NASA의 유인 달 탐사 사업인 아르테미스에 참여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아르테미스 협정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양분되고 있는 세계 우주 개발 구도에서 인도가 미국 편에 섰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뿐 아니라 그간 러시아에 의존해 왔던 우주비행사 훈련도 미국에 의뢰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NASA와 협력해 2024년까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인도 우주인을 보내기로 합의하는 등 ‘달 남극 최초 착륙’이라는 경쟁력을 추가한 인도는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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