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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필요하다면 중국에 채찍 휘두를 수도” 압박, 중국은 ‘희귀광물 수출 통제’로 맞불

지나 러몬도(오른쪽)이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CNN 캡처

나흘간의 중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중국을 향한 미국의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채찍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사용할 준비가 된 상태”라며 중국을 압박하면서다.

중국 역시 수출통제회의를 열어 희귀광물을 독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며 맞불을 놓은 가운데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가 완전한 회복세에 들어선 반면, 중국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고 진단하며 양국의 갈등이 지속된다면 중국이 더 큰 타격을 입으리라 전망했다.

지나 러몬도 “반도체 규제 풀 생각 없어”

3일(현지 시각) CNN과의 인터뷰에 나선 러몬도 장관은 방중 성과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안정적이고 유의미한 무역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많은 관심이 모인 것을 알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중국에 머무는 동안 현지 정부의 고위 관료들과 두루 만났으며, 그들은 우리가 여러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고 말했다. 미 상무부가 수출통제 및 투자 규제, 관세 등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더 세게 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러몬도 장관은 “미국은 강력한 채찍을 가지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언제든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몬도 장관은 최근 본인을 포함한 미 정부 고위인사 및 기관들의 이메일 등이 중국 해커들에게 공격받은 사건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중국 해커들이 내 이메일을 해킹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방중 일정 중 해당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이어 “중국 정부도 몰랐던 사실이라고 하지만, 이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양국의 신뢰에 악영향을 끼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러몬도 장관은 CBS와의 인터뷰에서도 미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기업들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는 점을 중국 정부에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자국 기업이 안전한 환경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가 예측 가능한 시장환경과 공평한 규제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다만 대중국 반도체 규제에 대해서는 물러설 틈을 보이지 않았다. 러몬도 장관은 “우리는 중국이 군사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가장 정교한 미국산 반도체를 중국에 팔지 않겠다”고 강조하며 “이는 국가 안보에 관한 것으로,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오는 9월 종료하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일부 예외 조항에 대해서는 유예 여부를 검토 중이며,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을 아꼈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는 조치에 나선 바 있다.

“중국과 디커플링 하려는 국가들, 보복 좌시하면 안 될 것”

경색된 양국의 관계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중국도 희귀광물 수출통제를 내세워 미국 견제에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4일 “지난 1일부터 양일간 ‘전국 수출통제 업무회의’를 열어 지금까지의 수출 통제 업무를 총결하고 다음 단계 핵심 업무를 안배했다”고 밝혔다. 중국 내 지역별 관련 부문 책임자들이 참석해 진행된 해당 회의에서는 각 지역이 목표 지향성을 강화하고, 혁신적인 사고방식으로 현대화된 국가 수출통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논의가 오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사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회의를 “중국의 경제와 안보를 지키려는 결심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하며 “국제사회에서 점점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거나 중국과 디커플링(탈동조화) 하려는 국가들은 이를 좌시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특정 국가가 중국을 겨냥한 일방적 제재나 압박 등을 계속할 경우, 우리도 보복할 수단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양국의 갈등은 지난해 10월 미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대중국 수출 통제로 본격화했다. 해당 조치에 따라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에 큰 차질을 빚었고, 다른 국가들도 중국에 생산시설을 둔 경우 개별적 심사를 거치는 등 크고 작은 불편을 겪었다. 미국에 줄곧 제재 해제를 요구하던 중국은 올해 7월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고 있는 갈륨과 게르마늄 등 희귀광물 수출 통제 조치에 나섰고, 이는 지난 8월 정식 발효되며 강력한 대치 구도를 형성했다.

대중국 의존도 높은 한국의 ‘반도체 딜레마’

세계 반도체 생산 및 공급망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는 대한민국 역시 미국과 중국의 대치 구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중국이 ‘반도체 자급자족’에 속도를 낼수록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는 큰 타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해관총서(세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2023년 상반기 반도체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비롯한 다수의 현지 매체는 중국의 반도체 생산량 증가가 한국과 대만으로부터의 반도체 수입 급감을 의미하며, 이같은 배경에는 미국의 규제가 있다고 풀이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향후 10년간 각각 2,171억원, 150억원을 미국 내 반도체 설비에 투자할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는 우리 기업들에는 큰 기회인 동시에 대중국 의존도를 크게 낮춰야 한다는 과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으려면 대중국 투자 제한, 초과 이익 환수, 중요 정보 제출 등 다소 까다로운 요건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의 보조금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고수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반도체 동맹’에서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이 커진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인구와 시장을 자랑하는 중국과 기회의 땅 미국 사이에서 한국 기업들의 고민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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