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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업형 벤처캐피탈 ③ 일반지주회사 CVC 규제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보유가 허용된지 1년 반 만에 8개의 CVC가 신규로 설립되는 등 국내 시장에 빠르게 안착하는 모양새다.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일반지주회사 소속 기업형 벤처캐피털 현황’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국내에서 운영 중인 CVC는 12개사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8개사는 신규 등록, 3개사는 CVC 보유 후 지주회사로 전환했으며, 1개사는 지주 체제 바깥의 CVC를 지주 체제 내로 편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거래법 개정 후 일반지주회사도 CVC 보유 허용

국내 CVC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비지주회사 CVC와 일반지주회사 CVC다. 이 중 비지주회사 CVC는 전략적 동기가 상대적으로 위축된 데다, 스타트업 발굴보다는 모기업 납품사에 대한 투자 집행과 같은 위험 회피적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이 때문에 민간 재원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국내 벤처투자 생태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규모 및 역량의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일반지주회사도 CVC를 설립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의 벤처 출자 활성화를 통해 공공자금 의존도가 높은 국내 벤처 생태계를 민간 주도로 전환하기 위한 조처다. 그동안 금융자본인 은행과 산업자본인 기업 간의 결합을 제한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는 CVC를 보유할 수 없었으나, 2021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조건부로 허용됐다.

CVC 설립 시 ‘신기사’를 선호하는 이유

CVC는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와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사) 두 가지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해서 설립해야 한다. 다만 설립된 CVC들을 살펴보면 신기사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배경으로는 창투사에만 적용되는 각종 규제들이 거론된다. CVC의 주목적인 전략적 이익과 재무적 이익을 모두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자 자율성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창투사의 경우 납입자본금이 20억원으로 자본 요건이 낮고 2주 이내의 빠른 설립이 가능하지만 7년 이내 스타트업에만 투자해야 하거나, 금융회사 및 창투사 계열사에는 투자가 금지되는 등 투자 대상이 제한적이다. 반면에 신기사의 경우 납입자본금이 100억원 이상으로 자금적 부담은 있으나, 여신전문금융법(여전법)에 따라 명시적으로 규정된 부분이 적어 운신의 폭이 넓다. 또한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 및 신기술사업, 코넥스, 스타트업에 대해 직접 투자도 가능하다. 지분이익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도 받을 수 있는 데다 해외 투자 제한이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특히 창투사의 주무부처가 중소벤처기업부라는 점도 기업들을 신기사로 이끄는 데 한몫했다. 투자회사인 창투사와는 달리 신기사는 ‘금융업자’다. 때문에 창투사는 벤처투자법에 따라 중기부의 통제를, 신기사는 여전법에 따라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의 통제를 받게 된다. 한 CVC 관계자는 “대기업이 신사업의 일환으로 금융업, 벤처투자에 진출하면서 중소벤처기업부의 통제를 받는 것에 대해선 규모 면에서 꺼려지는 부분이 있다” 고 설명했다.

일반지주회사 CVC에만 적용되는 ‘242 규제’

투자에 제약이 없는 비지주회사 CVC와 달리 일반지주회사 CVC는 개정 공정거래법에 의거한 규제를 적용받는다. 이는 △타인자본을 이용한 지배력 확장 억제 △금산분리에 대한 예외 최소화 △지배주주 일가 사익편취 방지 등의 목적으로 마련됐다. 이른바 ‘242 규제’다.

먼저 타인자본을 이용한 지배력 확장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로는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일반지주회사 CVC는 일반지주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로 설립해야 하며 둘째, 일반지주회사 CVC의 총부채는 자기자본의 200%를 초과할 수 없다. 창투사 1,000%, 신기사 900%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셋째, 펀드 결성 시 외부출자 비중은 펀드 전체 규모의 최대 40%로 제한된다. 펀드를 조성할 때 기본적으로 계열사의 출자는 허용되나, 금융 계열사나 총수 일가는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일반지주회사 CVC는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나 CVC의 계열사에도 투자할 수 없다. 이를 통해 일반지주회사에 유보된 자금을 벤처 생태계로 흘러가도록 하는 동시에 지주회사의 과도한 지배력 확장을 막겠다는 취지다. 즉, 외부자금으로 계열사를 확대하지 못하도록 막는 하나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또한 개정 공정거래법은 금산분리 원칙에 대한 예외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반지주회사 CVC 운용과 관련한 투자만 허용하고 있으며 대출 등 타 금융업 수행을 금지하고 있다. 일반적인 GP-LP 구조에서 벤처캐피탈(VC)은 본질적으로 타인 자금을 위탁받아 투자를 통해 대리 운용하고, 수익을 위탁자에게 반환하는 방식인 만큼 금융업에 속하는데 이미 금산분리 원칙의 예외를 허용한 이상 예외를 최소화하고자 일반 금융업 수행을 금지한 것이다. 원래 신기사는 융자 및 타 금융업을 겸영할 수 있지만, 일반지주사가 CVC로 설립하는 신기사는 예외다.

지배주주 일가의 사익편취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로는 소속 기업집단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한 CVC의 투자와 지배주주 일가로의 CVC 스타트업 보유 지분 매각 제한이 있다. 계열사들이 위험을 부담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성공 시 지배주주 일가 지분이 높은 계열사가 취득할 가능성 등 여러 사익편취 가능성의 완전한 배제는 불가능한 만큼 해당 규제는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해외 투자 한도도 총자산의 20%로 제한된다. 제도를 악용하는 재벌들의 해외 사금고화 우려로 인해 강력한 규제가 적용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 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관한 제18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정부, 현행 40% 제한 외부출자 요건 완화한다지만

그러나 이같은 규제가 존재하는 한 당초 목적인 벤처투자 생태계 활성화는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업계에서는 벤처투자조합 공동운용 시 운용주체가 50%씩 출자하는 것이 관례처럼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최근 한 지주회사 CVC가 외부 투자자와 50 대 50 지분으로 출자해 펀드를 조성하고 공동운용하기로 했으나 외부자금 출자 한도 규제로 인해 무산되는 등 실제로 투자 활성화에 제약을 받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도 지주회사 CVC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의는 저성장 극복을 위한 투자 활성화 정책에 관한 건의 사항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하는 등 관련 논의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에 정부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일반지주회사의 액셀러레이터(AC) 보유를 허용하고, 개별펀드의 40% 이내로 제한된 외부출자 요건도 완화하겠다고 지난달 4일 발표했다. 정부는 하반기에 외부출자 비율에 대한 합의를 끝내고 개정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50~60%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투자 요건 완화는 제외돼 반쪽짜리 규제 완화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스타트업 투자 확대 및 재벌의 사익편취 방지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정책 목표임이 확실하나, 신기술과 신사업 모델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시장이 국경을 초월해 창출되고 있는 현재의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를 고려했을 때 CVC 투자 대상을 국내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해당 규제를 존치하되 중장기적으로는 해외투자를 통해 축적한 CVC 투자 경험이 국내 스타트업 투자에 활용돼 국내 CVC 투자 및 운용의 질적 수준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해외투자 한도를 점진적으로 높여갈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일반지주회사 CVC가 국내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내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의 질적 발전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주체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CVC라는 투자 주체의 속성과 운용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규제 환경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 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경제구조의 특수성을 감안해 일반지주회사 CVC의 긍정적 기능은 살리면서 금산분리 원칙의 훼손이나 경제력 집중과 대주주 사익편취 가능성 등 잠재적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꾸준히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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