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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 정책 제안, 현실 모르는 탁상공론

지난 7월 29일, 교육부가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만 6세가 된 다음 해에서 만 5세가 된 다음 해로 1년 하향시키는 정책을 제안했다. 교육부는 사회적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2025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인데, 이렇게 되면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된 이후 76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학제가 바뀌게 된다.

교육부가 발표한 학제 개편안에 교육계, 학부모 모두 거센 반발 

하지만 조기입학 제안에 대해 교육계의 후폭풍이 거세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교원단체·교사노조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학부모들이 모이는 인터넷 맘카페 등에서는 “아이들 학원 다니는 시기가 더 앞당겨지겠다”, “태어나자마자 조기교육 시켜야 할 판”, “아이들이 실험 대상인가”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의 단체는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 연대’를 결성하고 8월 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는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도 “청소년들을 직업 전선에 1년이라도 빨리 내보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시장과 기업의 가치에 매몰된 국정운영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를 의식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로 하향하려는 이유에 대해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대안으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 정책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 선상에서 공정함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라고 밝혔다.

박 부총리는 “지식의 습득이라는 것은 누적되고 축적되는 결과물이다. 그래서 한 번 누적된 지식을 다른 아이들이 추월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조기에 출발 선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공정한 교육기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그 정책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잠재력이 발현되기까지는 교육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일방적인 제안이라는 비판을 의식했는지, 앞으로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여지를 남겼다.

아울러, 교육부는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 제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자 학부모 의견수렴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박 장관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부작용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박 장관은 “사회적 합의를 거치겠다” “우려하지 않으셔도 된다”고만 할 뿐, 구체적 방법론은 제시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가 이번 정책에 대한 우려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등을 말했지만, 박 장관은 정 대표의 팔을 잡고 달랠 뿐 발달 단계상 만 5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괜찮은 근거가 무엇인지, 어떤 점을 해결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박 장관은 학부모들에게 “이번 논의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주고 보살핌을 못 받는 아이들까지 품고 싶다는 선한 의지에서 시작했는데, 전달하는 과정에서 학부모님들께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발표 나흘 만에 폐기 언급, 여론은 더 악화 

결국, 간담회를 통해도 논란이 진정되지 않자, 교육부는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을 유보하기로 했다. 박 장관은 2일 정부청사에서 학부모 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최근 벌어진 취학 연령 하향조정 논란과 관련해 “어떻게 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시행하겠느냐”고 폐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르면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만 6세에서 5세로 한 살 앞당기겠다는 내용의 학제 개편안을 발표한 지 나흘 만이다.

박 장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초등 입학연령 하향)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교육계와 학부모,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결국 물러선 것이다. 이날 대통령실에서도 “여론을 들어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안상훈 사회 수석도 “교육부가 신속하게 공론화를 제안하고 국회에서 초당적 논의가 가능하도록 촉진자 역할을 해달라는 게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었다”고 말했다. 반대가 우세하면 정책을 백지화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리 좋은 내용의 정책이라도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초등 입학연령 하향은 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론이 나쁘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키워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추진’ 언급량 추이/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이와 같은 비판의 목소리에 국민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 정책에 대한 인터넷상 언급량을 조사해본 결과, 정책을 발표한 7월 29일 이후로 해당 키워드의 언급량이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해당 정책을 유보하겠다고 발표한 8월 2일까지 계속됐다. 8월 2일부터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해당 발표가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해당 언급량은 8월 1일에 약 1억 3000만건을 기록하며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증가하기 시작한 7월 29일 언급량 약 740만건에 비해 17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키워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 채널 카테고리별 언급량/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언론과 국민 모두 관련 논란에  큰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매체별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 정책에 대한 언급량을 조사해본 결과, 가장 언급량이 높았던 매체는 국민들에게 있어 장벽이 낮고 접근성이 좋아 비교적 쉽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매체인 커뮤니티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언급량은 약 4,300만건으로, 뉴스에서의 언급량 약 1,900만건을 2배 이상 웃도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온라인 카페에서의 언급량도 약 2,800만건으로 뉴스와 약 900만건 차이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키워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 긍부정 비중/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키워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 긍부정 비중 기간별 추이/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해당 정책에 대한 인터넷상 언급량을 토대로 긍부정 평가를 조사해본 결과, 많은 국민들이 이번 정책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정 평가가 64.65%로 긍정 평가 35.35%를 2배 가까이 웃도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기간별로 보아도 이러한 경향은 명확했다. 일주일간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하루도 빠짐없이 웃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8월 1일에는 부정 평가가 약 16억건을 기록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긍정 평가 약 12억건과 4억건의 차이를 보여주며 가장 큰 차이 폭도 보여주었다.

키워드 ‘박순애’ 긍부정 비중/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키워드 ‘박순애’ 긍부정 비중 기간별 추이/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교육부 정책과 장관 모두에 국민 여론 부정 평가 

부정 평가는 박 장관을 향해서도 나타났다. 박 장관에 대한 인터넷상 언급량을 토대로 긍부정 평가를 조사해본 결과, 부정 평가가 67.31%로 긍정 평가 32.69%의 2배 이상의 수치를 기록하며 부정 평가가 과반을 차지했다. 이는 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보다 더 높은 수치의 부정 평가이다. 의외인 것은 박 장관의 부정 평가가 최고치를 기록한 날짜가 간담회를 통해 처음 정책을 제안한 날짜가 아닌 해당 정책을 보류하겠다고 밝힌 8월 2일이었다는 점이다. 간담회에서의 태도, 우유부단한 결단력 등이 종합적으로 8월 2일에 판단되어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8월 2일의 부정 평가는 약 28억건이었으며, 이 날은 부정 평가와 긍정 평가의 차이가 제일 심한 날이기도 하다. 긍정 평가는 약 9억건으로 3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키워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 관련 키워드 네트워크/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학부모들은 왜 해당 정책을 반대하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로 입학연령 하향화와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인지적 학습이 뇌발달, 학습동기, 학업성취, 인지기능, 정서조절, 정신건상, 대학입학 및 취업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더 일찍부터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6세 딸 아이를 둔 한 학부모 A씨는 “1학기 초반엔 적응기를 가져 점심시간에 하교하기도 하는데,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학원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사교육을 더 부추길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우려는 비단 학부모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 정책과 관련돼서 언급된 키워드를 네트워크 그림으로 정리해본 결과, ‘반대’라는 키워드와 함께 ‘사교육’ ‘발달’ ‘문제’ 등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들도 똑같은 이유로 해당 정책에 대해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 이유로 꼽힌 것이 방과 후 돌봄 서비스 부재이다.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인천학부모회도 성명서를 내고 “학부모들은 지금 단단히 화가 났다”며 “교육부가 학교와 교육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아우성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학부모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당장 많은 걱정을 안아야 한다. (그나마) 유치원은 오후까지 아이들을 봐주지만, 초등학교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돌봄교실, 태권도, 미술 학원 등을 뺑뺑이 돌리게 현실”이라며 아이들이 조기입학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증가, 학습 및 학교 생활 부적응 문제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교육부는 5세 취학에 대한 0.1%의 낮은 선호와 발달에 부정적이라는 전문가들과 학부모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아들을 볼모로 무책임한 실험을 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유아교육은 단순히 초등학교 직전의 준비교육이 아니라, 유아의 요구와 발달에 귀 기울이면서 경험을 연결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새 정부가 우려하는 유아교육 내부의 격차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행정부처 이원화, 교사 간 양성과정 및 처우 차이에 기인한다. 유아교육에 지원을 미뤄왔던 국가가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유아기를 아울러 모든 세대의 삶의 질과 연결된 체계로서 유아교육을 다시 바라보길 요청한다. 더 이상의 탁상공론을 멈추고 국가가 유아교육에 진 부채를 책임 있게 갚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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