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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성’ 못 버린 공공배달앱, 결국 퇴출 수순 “사실상 세금만 낭비한 꼴”

사진=배달의명수

민간 배달앱의 높은 수수료를 문제 삼으며 각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내놨던 공공배달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중소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던 기존의 정책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혈세 낭비만 한 꼴이 됐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시장에선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 위주로 설계된 서비스가 실패의 주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무원 조직 특성상 기민한 변화와 피드백 반영이 필수적인 플랫폼 사업을 시작하는 게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먹깨비, 부르심 등 공공배달앱 줄줄이 ‘퇴출’

31일 업계에 따르면 2021년 1월 나온 대전 공공배달앱 ‘부르심’은 그해 12월 운영을 종료했다. 같은 해 론칭한 전남 여수 배달앱 ‘씽씽여수’도 지난해부터 전남 배달앱’ 먹깨비’에 흡수되며 사라졌고, 2021년 3월 출시한 경남 거제의 ‘거제올거제’의 경우 지난해 12월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서비스를 접었다.

2020년 12월 출시한 강원도 배달앱 ‘일단시켜’도 오는 10월 서비스가 중단된다. 아직 살아 있는 공공배달앱들도 고객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최초의 공공배달앱인 전북 군산 ‘배달의 명수’는 출시 직후인 2020년 5월 5만2,000명의 MAU(월간활성이용자)를 기록했으나 올해 7월 1만8,000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경기도의 ‘배달특급’도 2021년 60만 명까지 MAU가 늘었으나, 올해 7월 34만 명 수준으로 뒷걸음질 쳤다.

공공배달앱은 출시 당시부터 세금을 투입해 배달 음식 소비자와 자영업자의 수익을 보전해 주는 게 맞느냐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당시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위기에 빠진 자영업자를 도와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해 사업이 연장됐으나, 최근엔 공공배달앱들이 자영업자들 돕겠단 본연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지자체마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세금을 낭비했다는 비판만 받게 됐다.

공급자 우선한 공공배달앱, 실패는 예견된 일?

업계에선 소비자의 편익이 아닌 자영업자의 편익에만 중심을 두고 설계된 공공배달앱이 당초 성공하기란 어려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간 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수료를 적용해도 정작 소비자들이 공공배달앱을 외면하면서 자영업자들도 사용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장님들 입장에선 수수료를 지불하더라도 확실히 손님을 끌어와서 매출을 올려줄 수 있는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와 같은 서비스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더더욱 편리하게 많은 식당에서 음식을 빨리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앱을 선호하다 보니 공공배달앱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과 자체도 미미한 수준이다. 서울시가 내놓은 공공배달앱 제로배달 유니온의 점유율은 3%로, 이는 시장 전체에서 매우 작은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다수 업체가 점유율을 분산하고 있는 것이 아닌, 3개 업체가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시장 상황에 비춰보면 3%라는 수치는 더욱 작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마저도 여타 지자체들의 공공배달앱은 점유율이 1%대로 추정되거나 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공무원 조직 특성상 애초부터 불가능한 도전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간 기업은 개인의 이익을 좇는 집단인 만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다 기민한 사업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가 잦다. 반면 공공기관 사업의 경우 이익의 극대화보단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에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조용한 사직’ 등으로 민간 기업에서조차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이 다수 발생하고 있는 모양새다. 크게 변화하지 않아도 월급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공무원 체계 아래서 혁신적인 일 처리를 바라는 건 당초 무리였다는 업계의 반응이 쏟아진다.

대구로 택시/사진=대구로

생존경쟁 이어갔지만, “배달앱 사업 너무 쉽게 봤다”

그렇다고 공공배달앱이 생존경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공공배달앱들은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수요가 줄기 시작하자 택시 호출, 전통시장 장보기, 정기구독 서비스, 결식 우려 아동 급식 지원, 지역 맛집 밀키트 판매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돌파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구광역시는 플랫폼 업체의 과도한 수수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택시업계를 돕고 공공배달앱 대구로를 활성화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지난해 12월 ‘대구로택시’를 추가로 도입했다. 대구시는 대구로택시앱을 이용할 경우 초기 6개월간 수수료를 전혀 부담하지 않고 이후에는 콜당 200원을 부담하되, 월 3만원을 한도로 설정해 아무리 많이 벌어도 수수료 부담이 3만원에 그치도록 했다. 이에 대구로택시에 가입한 택시 수는 현재 1만500여 대로 늘었고, 누적 호출 건수는 135만 건을 넘어섰다.

전북 전주시는 작년 2월 말 출시 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공공 배달앱 ‘전주 맛배달’에서 지난 1일부터 정기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경북도는 공공배달앱 먹깨비를 통해 지난 5월부터 급식지원카드 결제와 전통시장 배달 서비스를 도입했다. 결식 우려 아동 급식지원카드(참사랑카드)를 먹깨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불우한 환경에 놓인 1만여 명의 아동들이 편안하게 음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부 지자체에선 공공배달앱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화폐를 발급하고, 이를 공공앱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자체가 배달앱과 같은 플랫폼 사업을 너무 쉽게 보고 접근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비스를 설계해 소비자에게 공개한 뒤 피드백을 받아 끊임없이 고쳐나가는 ‘애자일(Agile)’한 과정은 공무원 조직이 소화하기 버겁다는 설명이다. 특히 세금으로 모든 사업예산을 꾸리는 공무원조직에서는 기민한 의사결정이 애초부터 불가능해, 배달앱과 같은 사업을 시작하면 안 됐다는 게 주류 의견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 교수는 “네이버, 카카오의 사례에서 보듯 플랫폼 서비스는 초기에 완성도가 떨어져도 일단 사용자 피드백을 받으면서 패치, 업데이트,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도를 높이는 ‘실험’이 필요하다는 특성이 있다”며 “우리나라 공공부문에서 뭔가 서비스를 내놓을 때는 높으신 분 보여줄 시연작을 만들어 놓고 승인받은 뒤에는 개선되는 부분이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배달앱 안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실험을 하는데, 성패 여부가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며 “세금으로 운영하는 지자체는 이러한 불확실성에 예산을 쓴다는 게 쉽지 않고, 기술인력을 자체적으로 보유하지 못해 서비스 제작을 모두 외주에 맡겨야 하고,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 절차 등이 복잡해지기에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대처하는 데 명확한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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