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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불안에 휩싸인 신림동, 지역 혐오가 ‘슬럼’을 만든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지난달 발생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 등산로 성폭행 사건 등 연이은 흉악범죄로 인해 시민 불안감이 고조된 것이다. 살인사건에 이어 모방범죄 예고까지 잇따르자 인근 주민들은 일상생활 중에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고 호소한다.

한편 전문가들은 흉악범죄의 굴레를 끊어내지 못할 경우 인근 지역이 ‘슬럼(Slum, 도시의 빈민구역)’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하루빨리 경찰 치안 활동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극도에 달한 시민들의 불안감을 덜어내 신림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림, 범죄도시 아니에요” 주민들의 호소

신림동은 과거 ‘고시촌’의 중심지였던 서울 남부의 서민 지역이다. 과거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은 고시 준비생이 모여 거주하던 지역이었으나,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임된 뒤 고시생 숫자가 급감했고 현재는 고시촌이 아닌 원룸촌이 자리 잡고 있다. 비교적 집값이 저렴한 편이라 많은 구직 청년이나 사회초년생, 외국인 등이 신림동에서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인근 지역에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흉악범죄가 잇따르면서 신림동에 ‘우범지대’라는 부정적 프레임이 씌워졌다. 일종의 지역혐오 현상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신림동은 할렘가인가”, “원래 신림동 쪽은 그렇다”, “돈 없는 애들이 사는 싼 동네라 그렇다” 등 신림동에 대한 혐오성 발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주민들은 무작정 ‘범죄도시’ 타이틀을 씌우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 사건·사고는 신림동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며, 최근 신림동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범인 역시 지역 주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시가 공개한 2021년 기준 자치구별 ‘5대 범죄'(살인·강도·강간 및 강제추행·절도·폭력) 발생건수 통계에서 신림동이 위치한 관악구는 8.8건을 기록, 8위에 이름을 올렸다. 5대 범죄 발생건수는 중구가 인구 1,000명당 21.7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종로구(17.6건), 강남구(11.4건), 영등포구(10.4건), 용산구(10.0건) 순이었다.

연이은 흉악범죄로 시민 불안감 최고조

신림동 인근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최근 줄줄이 벌어진 실종 사건, 흉악범죄 등에서 기인한다. 지난달 21일 신림동 신림역 4번 출구 근처 골목 및 지상 주차장에서 30대 남성 피의자 조선이 흉기로 20대 남성 1명, 30대 남성 3명을 무차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장 심하게 공격당한 첫 번째 피해자는 과다출혈로 사망했으며, 병원으로 이송된 다른 부상자 3명 중 1명은 중상을 입어 생명이 위태로웠으나 수술을 받고 큰 고비를 넘겼다.

지난 17일에는 신림동 한 공원 둘레길에서 대낮에 30대 남성이 여성을 너클로 무차별 폭행한 뒤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흉기 난동 사건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또 다른 흉악범죄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범행 현장은 흉기 난동 현장에서 불과 2㎞ 떨어져 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피해 여성은 끝내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는 주된 사인이 압박에 의한 질식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인근 봉천동에서는 실종 사건이 벌어져 시민 불안감을 키웠다. 고등학교 1학년 김지혜(15)양은 지난 17일 오전 학교에 간다며 관악구 봉천동 주거지를 나선 뒤 연락이 끊겼고, 등교도 귀가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 경찰에 실종 신고가 접수됐고, 김양은 21일이 돼서야 영등포구에서 발견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연이은 흉악범죄로 인해 신림동의 이름을 딴 범죄행위 일당인 ‘신림팸’이 재조명받고 있다. 신림팸은 온라인 커뮤니티 ‘DC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활동하는 이용자들이 만든 모임으로, 지난해 가출해 실종 신고 상태인 미성년 피해자를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신림팸 근거지에 머물도록 하고 집에 보내지 않은 혐의(실종아동법 위반)를 받는다. 미성년자에게 음주·마약을 권하고 성착취를 했다는 의혹 역시 제기된다.

‘슬럼화’ 막으려면 범죄와 혐오의 굴레 끊어내야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유사한 범죄 예고가 잇따르자 경찰은 지난 3일 특별치안활동을 선포, 도심 곳곳에 장갑차와 경찰특공대를 배치했다. 다중밀집지역 3,329곳에는 하루 평균 1만2,704명의 경찰관을 투입했으며, 특히 신림동의 경우 지난 8일 민·관·경이 합동 순찰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찰의 철통 경계가 무색하게 또다시 등산로 강간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신림동에 ‘우범지역’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경우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라 슬럼화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쏟아지는 부정적인 보도 및 경찰의 치안 확보 실패로 인해 시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신림동 일대는 빠르게 침체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신림동·봉천동 일대에서 이어지는 범죄와 혐오의 굴레를 끊어내고, 행정력을 동원해 치안 회복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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