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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현직 교사의 입시학원 문항 판매, 엄단할 것”

25일 교육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제3차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협의회'를 열었다/사진=교육부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3차 사교육 카르텔, 부조리 범정부대응 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교육부

교육부는 현직 교사가 대형 입시학원이나 학원 강사에게 고액의 원고료를 받고 문항을 판매하는 등 사교육 업체와의 유착, 금품수수 등이 있는 경우 엄정 처벌하기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다만 현직 교사가 시중에 판매하는 출판사 문제집을 저술하는 것은 기존대로 허용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장상윤 차관 주재로 ‘제3차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협의회’를 열고 사교육 카르텔에 대한 범정부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협의회에는 교육부를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 경찰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병무청, 시도교육청, 한국인터넷광고재단이 참여했다.

이날 협의회에서는 현직 교사가 일부 수험생에게만 배타적으로 판매·제공되는 학원 교재에 사용할 문항을 제작해 사교육 업체에 판매하고 고액의 원고료를 받는 행위에 대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현직 교사가 참여해 제작한 학원 교재들은 이른바 ‘킬러문항 모음집’ 등의 이름으로 일부 소수의 수험생에게만 암암리에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차관은 “교원이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판매하는 사례는 사실상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행위로 공교육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며 “사교육 업체와의 유착, 금품수수가 확인되면 청탁금지법 위반, 영리업무 금지·성실의무 위반 등을 적용해 경찰청, 시도교육청 등과 협력해 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시중에 공개적으로 유통, 판매되는 출판사 문제집의 저술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허용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현직 교사들의 부적절한 영리업무와 일탈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 중으로 ‘교원의 영리행위 금지 및 겸직허가 가이드라인’를 발표하기로 했다.

입학사정관, 유아 영어학원, 컨설팅학원 등도 집중 점검

대입 수시제도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입학사정관이 사교육 업체에 근무하는 사례에 대해서도 시도교육청, 경찰청, 대학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긴밀히 대응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A학원 강사가 ‘유명 사립대의 현직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홍보한 신고 사례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장 차관은 “관할 교육청이 해당 대학에 확인한 결과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했다는 홍보 내용은 허위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현재 경찰이 A강사를 사기 협의로 수사 중이며, 해당 대학도 A강사를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유아 영어학원의 편·불법 운영에 대해서도 지도 점검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날 협의회에서 교육부는 시도교육청과의 합동점검 결과를 공유하면서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에 접수된 유아 영어학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지도·점검하는 한편 허위·과장 광고에 대해서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8월에는 지난 6월 발표한 사교육 경감 대책의 후속 조치로 ‘유아 국가책임 강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고센터에 접수된 수시 컨설팅 학원의 편·불법 운영에 대해서도 엄정 대응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20일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수시 컨설팅 학원을 불시 점검해 무등록 학원을 고발하고 학생들의 정보를 동의 없이 홍보에 사용한 학원에 대해서는 유관기관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조사를 요청했다. 이와 함께 대입 수시전형에 대한 준비가 본격화되는 여름방학에 맞춰 컨설팅·논술 학원, 여름방학 입시 캠프의 편·불법 행위도 집중적으로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병무청과는 사교육 업체의 병역특례 업체 지정 문제와 관련해 대책을 논의했다.  과기부와 병무청은 수능 킬러문항 모의고사 제작 업체가 병역특례 업체로 지정돼 병역 대체 복무 중인 전문연구요원이 모의고사 문제를 제작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해당 업체 실태조사 후 결과에 따라 엄정 조치하기로 했다.

2주간 집중신고, 카르텔 의심되는 중대사안 4건 경찰 수사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주간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한 결과 24일 오후 6시 기준 325건이 접수됐다. 사안별로는 사교육 부조리 신고가 285건, 카르텔 신고가 81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대형 입시학원 관련 신고는 64건으로 나타났다.

카르텔 관련 신고 중 사안이 중대한 4건에 대해서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해당 사례는 대형 입시학원 강사가 수능 출제 경험이 있는 현직 교사로부터 문항을 구매해 교재 등을 제작하는 등 사교육-수능출제 체제 간 유착이 의심되는 사안이다. 이와 함께 학원, 강사, 모의고사 업체가 연계해 학생들에게 교습비와 함께 학원교재, 모의고사, 노트까지 묶어 구매하도록 한 9건에 대해서는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사교육 부조리 신고 15건에 대해서도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할 예정이다. 대형 입시학원의 허위·과장 광고 10건을 포함해 교습비 게시, 교실당 학생 수용인원 등 학원법이 정한 의무를 위반하고 사익을 추구한 행태 등이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지난달 26일부터 신고된 25개 학원에 대해 합동점검을 실시해 학생 초과 수용을 위한 임의 시설 변경 등을 적발해 벌점·과태료 부과, 시정명령·교습정지, 고발 등 조치했다. 이 밖에 영세학원 관련 신고 등 비교적 경미한 163개 사안에 대해서는 교육청으로 이관해 처리 중이다.

한편 25일 감사원은 사교육 카르텔 문제와 관련해 감사대상과 시기, 감사 가능범위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대상은 시도교육청, 공립학교와 교사, 관할 교육청이 임원의 승인과 취소를 담당하는 사립학교의 교원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소재 입시전문 대형학원에 대해 합동점검을 실시하고 있다/사진=교육부

사교육비 26조로 역대 최대, 과열된 대입 근원적 문제 살펴봐야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 킬러문항 배제’를 지시한 이후 국세청이 대형 입시학원과 유명 강사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서는 등 사교육 카르텔에 대한 조치가 시작됐지만 일각에서는 과열된 대학 입시의 근원적 문제는 간과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교육당국이 이른바 ‘킬러문항’으로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으로 변별력을 확보하고, 사교육 업체는 ‘족집게 강의’로 부를 축적하는 공생 관행이 대학 입시의 공정성을 훼손시켰다고 보고 있다.

이 전에도 수험생의 학습부담을 줄여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입시정책들이 꾸준히 시행돼 왔다. 하지만 대학 서열화와 공교육 붕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입시정책의 변화만으로 사교육의 팽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2011년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 조치의 일환으로 EBS와 수능 연계율을 70%까지 확대했지만 실제 사교육 경감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파악돼 최근 연계율을 다시 50%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성적보다 잠재력을 우선해 학생을 선발하겠다며 지난 2008년 도입한 학생부종합전형 역시 오히려 사교육 시장을 팽창시키고 교육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과 함께 학종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조사 결과 지난 10년간 학생부 조작, 자기소개서 표절·대필 등이 심심찮게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학종으로 인해 수능의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학교 내신이나 대입 면접, 논술 등에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이 오히려 증가했다.

실제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역대 최대치인 26조원에 달했다. 학종이 도입되기 전인 2007년 대비 29.5% 증가했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07년 월 22만2,000원에서 지난해 41만원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코로나19 기간동안 학교에서 대면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파른 증가세다.

정부가 한국 교육의 서열화 문제를 언급하며 입시 정책을 바꾸는 방식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사교육 문제는 단기간의 입시 정책 변화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상대 평가가 본질인 대입에서 서열화와 기회 균등, 다양성은 공존하기 어려운 트릴레마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입시가 아닌 교육의 영역을 보고 교육정책을 대학과 산업, 노동정책과 연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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