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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투자 혹한기, 벤처기업들에게 건네는 조언 ③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7일, 올해 9월까지 벤처투자가 5조3,752억원이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 지난해 4분기 정점을 찍은 이래 점차 감소추세에 있지만, 연간으로 봤을 때는 1월~9월 기준 역대 최대치다.

그러나 올 4분기 예상되는 벤처투자액을 합산해볼때, 작년에 비해 10-20% 가량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위기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투자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성장을 위해 외형 확장에 목을 매던 수 많은 플랫폼 회사들이 외형을 크게 축소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거나, 혹은 아예 M&A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다.

중기부 장관까지 “돈이 많아도 투자를 안 하는게 답일 수 있다”는 상황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시장 파이가 작아지고 있는 와중에 심지어 모태펀드까지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기부 장관이 국감장에서 돈이 많아도 투자를 안 하는게 답일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놓을만큼 시장이 얼어붙고 벤처기업들의 기업가치에 물음표가 매겨져 있는 상황이라고 알려왔다. “금리 인상 탓에 밸류에이션(기업가치평가)이 Justify(정당화) 안 된다는 생각들이 박혀 있어 당분간 시장 축소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금리 인상과 별개로 투자가 계속 이뤄져서 성장하는 플랫폼 회사들에게 단순히 시장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저가 밸류에이션을 받아들이고 계속 마일스톤(Milestone, 투자사와 다음 투자까지 맞추기로 한 경영 성과)을 맞춰라고 압박하는게 투자사 입장에서도 곤혹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또 다른 벤처투자업계 경력 10년에 이르는 고위직 관계자는 “힘들 때 일수록 정부가 미국발 금융시장 침체에 방파제가 되어야지, 거꾸로 같이 고생해라는 식으로 나오면 결국 최근 3-4년 사이에 투자 받아 마일스톤 맞추기 버거웠던 플랫폼들더러 도태되라고 내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는 의견을 냈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간 지나치게 고가의 밸류에이션을 요구해서 투자에 선뜻 나서기 힘들었던 상황이 많았는데, 이제야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며 “괜히 정부가 나서서 도태되는 벤처들 살려줄게 아니라, 옥석가리기를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관계자도 있다.

미국은 민간 VC가 탄탄하게 갖춰져, 한국은 정책 금융 의존도 너무 높아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민간 VC가 탄탄하게 갖춰져 있기 때문에, 눈치보는 것 없이 요즘 같은 시장에 저가로 많은 기업들에 되려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는 주장과 함께, “경기 침체기에는 언제나 현금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 위험 부담을 하는 투자자가 경기 회복 후 이득을 보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반면, 한국은 “정책 금융으로 받은 투자금이라 매출액이 안 나오는 스타트업에는 투자하면 안 된다는 어이없는 규정부터, 기술 심사 평가 능력이 없는 벤처투자사들한테 기술 심사를 해라고 하니 그저 언론사 홍보 자료나 국내·외의 아무 의미 없는 기관들의 도장이 마치 큰 가치를 가지는 양 왜곡보도되는 것”이라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정책금융에 의존해가면서 전직 정부 관료를 데려왔다느니 하는 뒷소문이 나도는 기관이 정책금융자금을 대규모로 수주하는게 아니라, 민간이 자생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기회로 보고, 정부에서도 정책 방향을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 아니라 ‘장기적 발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책 자금, 왜 시장 눈치보나? 공적 자금도 눈치 안 봤다

이어, “이렇게 미국 상황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시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알고보면 정책 자금도 함께 줄어서 그런 것”이라는 평도 내놨다. 정책 금융 의존도가 높았던만큼, 미국발 금리인상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에도 불구하고 정책 금융의 전폭적인 지원이 계속 이어졌을 경우, 지금처럼 대형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투자자 심리에 끌려다니지 않았어도 되었을 법했으나, 정작 정책 금융을 집행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먼저 시장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인 탓에 시장 위축이 오히려 더 빨리 왔다는 것이다.

외환 시장에는 ‘재야의 고수도 관군을 이길 수는 없다’는 속설이 있다. 외환 투자 전문가도 중앙은행이 환율 움직임에 직접 개입할 경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비단 외환 시장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같은 대형 정부 기관이 개입하는 주식, 채권 시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 파이가 훨씬 더 작은 벤처투자 업계는 말할 것도 없다. 정작 199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공적 자금을 100조원 이상 투입할 때도 시장 눈치를 보지 않아놓고, 사실상 정책 금융으로 굴러가는 벤처투자 시장을 만들어 놓고는 “고작 분기당 1조원 남짓” 투자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시장 눈치를 보는 것이 납득할 수 없다는 한 벤처업계 관계자의 목소리에 설득력이 느껴지는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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